steelmeme - Part 3
대표 생각 Ethos

진정으로 배운다는 것, 사이후이

100명이 똑같은 자기계발서를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 ​ 이중 1독하는 사람은 몇 %일까? 만약 한 권의 자기계발서를 3번 정독했다고 가정해 보자. 100명 중 몇 명이나 3번 정독할까? ​ 더 나아가 보자. ​​ 하나의 자기계발서를 7번 읽는다. 100명 중 단 1명이라도 7번 읽는 사람이 있을까? ​ 7회독 공부법이란 게 있다. 같은 책을 7번 보면, 도쿄대 법대를 가고 서울대 의대를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7번쯤 읽으면, 책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밥 프록터는 자신의 멘토 얼 나이팅게일의 『마법의 말(The Magic Word)』 오디오 강연을 무려 1만 번 듣는다. 해당 강연은 14분인데, 무려 1만 번 들었으니 2333시간 들은 셈이다. ​ 밥 프록터는 26세에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라는 책을 읽게 된다. 당시 팻이라는 친구가 밥 프록터에게 묻는다. ​ 팻 : 무슨 책 읽고 있어?밥 프록터 :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 (몇 달 뒤)팻 : 무슨 책 읽고 있어?밥 프록터 :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 (몇 달 뒤)팻 : 무슨 책 읽고 있어?밥 프록터 :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 밥 프록터는 죽을 때까지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읽었다. 죽음이 그를 멈출 때까지 말이다. ​ – ​ 논어 제1편은 학이(學而)이다.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 우리가 보통 무언가를 배운다고 할 때, 배움을 어떻게 바라볼까?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이해 후 암기하여, 머리에 집어넣는 것을 배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 시험을 볼 때 고득점을 받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논어에서 말하는 배움은 이와 다르다. 논어에서 말하는 배움은 도달처가 없다. 진정한 배움이란 죽음이 나를 멈추어 세울 때까지 ~ing하는 것이다. 이를 사이후이라 한다. ​ 밥 프록터는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반복해서 읽고, 20대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는 만 87세에 죽을 때까지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읽는다. 왜 그는 이렇게 같은 책을 반복하였는가? 배움에 완성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앞서 돈오는 깨달으면 끝이라 했다. 이건 불교의 정신이다. 그러나 유학은 다르다. 유학에서는 오직 끝없는 정진만 있을 뿐이다. 깨달음은 없다.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 나는 밥 프록터의 유작 『부의 확신』을 10번 읽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앞에 이렇게 기록을 한다. 실제 맨 앞장부터 맨 뒷장까지 10번 읽은 기록이다. ​​ 밑줄 친 것을 반복해서 읽은 건 50독이 넘었을 것이다. ​​ 나는 20대를 독서에 All-in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부의 확신』이란 책을 구매하기 전에, 이미 해당 책의 내용을 모두 알 수밖에 없다. 이미 다 아는 내용임에도 왜 나는 10독을 하고, 밑줄 친 건 50번 넘게 읽었을까? ​ 머리로 아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로 아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 나는 그랜트 카돈의 10배의 법칙을 7번 읽었다. 지금처럼 그랜트 카돈이 알려지기 한참 전, 2018년 4월부터 10배의 법칙을 읽었다.(개정 전) 노란색 책으로 4번(개정 후) 3번 ​ 하지만 나는 10배의 법칙을 이해했는가? 나는 여전히 10배의 법칙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수년 전, 내가 아는 지인에게 10배의 법칙을 추천한 적이 있다. 해당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10배로 크게 생각하고, 10배로 행동하라는 내용이 전부네.” ​ 맞다. 실제로 저 내용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10배의 법칙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책을 이해한다는 건 다음과 같은 의미다. ​​ 책의 내용이 나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아무런 저항 없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 ​ 이나모리 가즈오의 『바위를 들어올려라』는 너무나 많이 읽는 바람에 책이 뜯어져나갔다. 그래서 테이프로 붙이게 된다. 너무 진중하게 몰입해서 반복했기에, 잠재의식에 각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내가 기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바위를 들어올려라』에 나오는 흐름을 그대로 재현할 것임을 안다. ​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틈날 때마다 『바위를 들어올려라』를 펼쳐서 본다. 그리고 과거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 대학과 중용은 수십 번 반복해 읽었다. 중용은 수많은 저자들의 해석을 모두 비교해가며 읽고 또 읽었다. ​ 영혼에 각인하고 싶은 책의 문장은 작년에 200일 동안 매일 반복한 적도 있다. ​ 이처럼 수십, 수백 번 읽은 내용을 원데이 특강이나, 클라이언트의 코칭에서 가르친다. 교육학에서는 타인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장기기억의 최고봉으로 친다. ​ 그러나 내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여전히 안다고 생각할까? 여전히 모른다고 생각한다. 7번 이상 읽은 책의 내용을 가르칠 때도, 여전히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르칠 때마다 새롭다고 느껴진다. ​ 책의 내용이 가치를 결정할까? 아니면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가 책의 가치를 결정할까? ​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 > 책의 내용 ​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가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논어에서 말하는 배움, 죽음이 나를 멈출 때까지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하는 정신. 이것이야말로 유학의 정신이다.*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 진실로 하루가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 배움은 단순히 독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교육을 받는 것, 내 인생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 – ​ 돈오하면, 무수다. 단번에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게 없다. 이것은 불교의 정신이다. 반면, 깨달음이란 없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지속되는 배움만이 있을 뿐이다. 죽음이 나를 멈추어 세울 때까지 정진하겠다. 이것이 유학의 정신이다. ​ 자기계발과 성공학의 이치에 다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 내가 진정으로 최고의 미래를 실현할 것임을 안다면(돈오),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나를 가로막더라도, 어차피 최고의 미래는 실현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교적 접근이다.) ​ 내가 진정으로 최고의 미래를 실현하겠다고 결정했다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잠재의식을 최적화해야 한다. 매일 목표를 쓴다. 매일 보물지도를 본다. 매일 확정형 질문을 한다. 매일 심상화를 한다. 또한 잠재의식 최적화와 행동은 별개다. 행동은 행동대로 최적화해야 한다. (유학적 접근이다.) – 당신의 잠재력을 1000% 극대화하는 법[원데이 특강 신청하기] ​ ​
Posted by steelmeme
대표 생각 Ethos

도약의 한계, 오도일이관지

자기계발 성공학에서 이야기하는 돈오(도약)는 무엇인가? ​ 1) 내가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를 확정한다.2) 최고의 미래가 실현될 것을 안다.3) 행동한다.4) 이루어진다. ​​ 여기서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2번.최고의 미래가 실현될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영역, 확신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과 확신을 넘어서는 앎의 경지다. ​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최고의 미래를 실현하고 싶다고는 하지만, 막상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이들은 앎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즉, 도약하지 못한 것이다. ​ 최고의 미래가 실현될 것임을 진정으로 안다면, 어떻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하나다. 지행합일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더는 수행할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도약의 힘이다. ​ 돈오(단번에 깨달음)하면, 무수(無修)다. 더는 닦을 게 없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더는 수행할 게 없다. ​ – ​ 그럼 지금부터 도약의 한계와 위험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 실제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선방에 들어간다. 돈오하면 무수라 하지 않았는가? 단번에 깨닫는다면 더는 닦을 게 없는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선방은 3~4평에 불과하다. 문을 자물쇠로 채워 외부로 나갈 수 없다. 스마트폰, TV를 금지하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책조차 볼 수 없다. 선방 구멍으로 하루 한 끼를 공급받는다. 이 상태로 1000일을 수행하게 된다. ​ 결국 수행 중에 죽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돈오의 문제는 무엇인가? 평생 수행해도 돈오하지 못하면 끝이다. 진리를 보지 못한다면, 과거의 모든 수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 이것은 단순히 불교 수행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는 이치라는 것이 있고,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수로 요구된다. ​ 문제는 돈오는 혼자서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혼자서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오래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고 경험이 늘어난다고 돈오하지 못한다. ​ 그래서 멘토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이고, 인연이 중요한 것이다. ​ 자기계발서 수백 권 읽는다고 인생이 바뀔까? 실제로 바보 되는 경우가 흔하다.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목표만 비대해진 망상병 환자가 된다. ​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서를 한다고 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해도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걸까? 맥을 짚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문리가 트여야 한다. 물론 스스로 트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빠르게 맥을 짚으려면 멘토를 잘 만나야 한다. ​ – ​ 문제는 인간에게 한탕주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도약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그래서 비트코인을 하고, 대출해서 주식 투자를 하며, 마진거래, 해외선물을 한다. 극단적인 수익률을 얻어 인생 역전을 꿈꾸며 말이다.시크릿을 통해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게 되고, 트랜서핑과 같은 있어 보이는 책을 보게 되며, 어느덧 호오포노포노를 읽으며 무의식을 정화하고, 데이비드 호킨스를 접해 의식의 지도를 탐구하며, 에크하르트 톨레 책을 보며 현존과 참나를 쫓게 된다. 참나를 알게 되면 인생의 고통이 해결되고 원하는 삶을 얻게 될 거란 착각에 빠진다.스님들은 소승불교, 대승불교를 던져 버리고 간화선 하나로 돈오에 이르기 위해 선불교만을 쫓는다. 경전 공부 등한시하고, 초기불교의 위빠사나를 무시한다. 선 하나로 깨달으면 끝이 난다고 생각한다. ​ 분명 누군가는 빠르게 돈오한다.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에 해당하는 일이다. 빠르게 돈오하는 사람을 보며, 나 또한 빠르게 돈오할 거란 착각. 그래서 빠르게 도약하려는 욕심. 그리고 그 욕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가장 멀리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 자칫하면 평생 방황만 하다 인생이 끝나게 된다는 사실. ​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도약의 시기와 맥락을 잘못 잡으면 인생이 패망한다. ​ 공자는 어느 날, 자신의 제자 증자에게 말한다.吾道一以貫之오도일이관지”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뚫었다.”제자인 증자는 답한다.”그렇습니다.” ​ 이에 대해 남회근 대사는 『논어 별재』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공자는 증자가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자가 깨달았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제자에게 말한다.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뚫었다.” 증자는 스승의 말을 알아듣고,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이 공명된 것이다.이는 부처가 꽃을 들었을 때, 그 의미를 헤아린 마하가섭의 미소와 같다. 염화미소, 이심전심 말이다. ​ 공자는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는 말을 통해, 돈오무수의 이치를 제자에게 보인다. 하나(一)로써 꿰뚫었다는데, 도대체 하나(一)가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런데 증자는 또 알아듣는다. 문자를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치를 파악한 것이다. ​ 그러나 증자만이 예외일 뿐, 공자는 다른 제자들에겐 돈오(단번에 깨달음)의 이치를 전하지 않았다. 왜 공자는 돈오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제자들이 돈오한다면,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이에 대해 다음 글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 당신의 잠재력을 1000% 극대화하는 법[원데이 특강 신청하기] ​
Posted by steelmeme
대표 생각 Ethos

성장하지 마라, 도약하라.

하나의 클리셰가 있다. 성장이 중요해요. 성공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수많은 자기계발 영상이나 책을 보면, 성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빠짐없이 나온다. ​ 그러나 나는 항상 클라이언트에게 이야기한다.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의 늪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인생을 실전이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인생은 유한하다. 너무나도 유한하다. 잘못된 의사결정, 얕은 시행착오, 무의미한 실패를 반복하기에는 말이다. ​ 하지만 “성장하고 있으니까, 어제보다 오늘 성장했으니까. 오늘보다 내일 성장할 거니까.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는 나이브한 생각만큼 위험한 판단이 있을까? ​ 유학 경전 대학(大學)에서 이야기하는 수신(修身) ​ 유학 경전 중용(中庸)에서 이야기하는 신독(愼獨) ​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귀결이 일어나야 한다. 성장이 답이 아니다. 도약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장과 도약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기계발과 성공학의 관점에서 성장과 도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성장은 기존의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위에 쌓아나가는 것이다. 마치 블럭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 성장의 장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대전제를 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전제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 위에 소전제를 쌓아나갈 수 있다. 즉,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방향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그렇다면 성장의 단점은 무엇일까? 대전제를 건들지 않기 때문에, 비상식적이고 변칙적인 행동이 어렵다. 대전제가 잘못될 경우, 그 위에 쌓여나가는 소전제가 모두 무의미해질 수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적 만족감에 빠져, 실질적인 결과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급변하는 외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 반면, 도약은 기존의 프레임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마치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계명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종교로 개종하는 것과 같다. ​ 도약의 장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대전제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존의 관점에서 찾을 수 없는 정답을 발견하게 된다. ​​ 월 300만 원 버는 직장인이 있다. 이 사람이 직장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장인으로 인생을 살도록 만드는 신념 체계(대전제+소전제)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월 1000만 원 버는 사업가가 되고자 한다면? ​ 월 1000만 원 버는 사업가라는 대전제를 형성해야 한다. 월 300만 원 버는 직장인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소전제를 쌓아본들(성장) 실제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왜 저런 말을 하지?””왜 저런 행동을 하지?””도대체 저 사람의 정신세계는 이해할 수가 없네.” ​ 월 300 버는 직장인은 월 1000 버는 사업가의 생각, 판단,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월 1000 버는 사업가는 월 300 버는 직장인의 생각, 판단,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 각자의 신념 체계(대전제+소전제)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 왜 사람들이 온라인 강의를 듣고, 오프라인 교육을 들어도 인생이 안 바뀌는지 아는가? ​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고 싶어 하지, 도약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지식과 방법을 습득하면 인생이 바뀔 거라는 생각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 목표에 부합되는 신념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인생이 바뀐다. 즉, 강의의 내용은 2차적이다. ​ 명확한 목표가 있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데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사실 행동을 안 하는 게 아니다. 행동을 못하는 것이다. ​ 점진적인 변화는 성장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 극한의 변화는 도약을 해야 한다. 도약은 앞서 말했듯 개종이다. 종교를 바꾸는 것과 같다. 종교를 바꾼다는 것, 기존의 세계관의 붕괴를 의미한다. ​ 도약은 정신적 죽음을 수반한다. 따라서 도약하게 되면, 전혀 다른 신념 체계를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결과, 엄청난 속도로 인생이 변하게 된다. ​ 신병으로 인하여, 신내림을 받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대전제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어느 날, 믿음이 내면으로 들어와 성경의 말씀이 실재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대전제가 받아들여져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 하지만 도약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도약에는 단점이 존재한다. 다음 글에서 도약의 한계와 위험성을 다루고자 한다. ​ – 당신의 잠재력을 1000% 극대화하는 법[원데이 특강 신청하기]
Posted by steelmeme
절대 실현 멘탈

신에게 구걸하지 마라

이전 글을 읽지 않은 분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여 먼저 읽어주세요.www.steelmeme.com/insight/13686 시련과 역경에 취약한 프레임 원데이 특강이나 1:1 코칭을 진행하다 보면, 시련과 역경에 굉장히 취약한 프레임을 가진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문제 되는 경우와 영성-뉴에이지-신사고 운동 관점에서 문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나는 신이 존재함을 절대적으로 믿어. 내가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다면, 결국 신이 도움을 주실 거야.” ​​ 실제로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기도와 믿음으로만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는 프레임입니다. 시련과 역경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죠. 시련과 역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아니라, 신이 없애주길 바라는 태도입니다. ​​ “인생은 시련과 역경이 없이, 펼쳐지는 거야. 내가 무언가 애쓰고 있다면 잘못 살고 있는 거야.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면 삶은 물 흐르듯이 펼쳐져야 되는 거야.” ​​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트랜서핑의 외부의도, 도가 사상의 위무위(함 없이 함), 비셴 락히아니의 현실이 구부러지는 경지, 디팩 초프라의 최소 저항의 법칙, 대운을 탄다, 동시성이 폭발하면서 기회를 얻거나 인연을 만나는 등 ​ 신사고 운동 서적이나 수많은 영성 서적에서 내적인 행복감을 얻으면서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삶이 펼쳐지는 이상적인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 제가 분명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삶에 아무런 시련과 역경 없이 이와 같은 삶의 흐름을 경험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심지어 시련과 역경없이 이처럼 대운을 지나치게 타는 경우 끝이 좋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운을 본인 실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방심하고 발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저런 이상적인 삶의 경험 상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과거를 보면 무참하게 고통스러운 시기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대중적으로 책이 많이 팔리려면, 본인의 시련과 역경은 언급하되, 독자들의 시련과 역경을 언급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적인 내적 평화만을 논의해야 합니다. ​​ 따라서 시중에 판매되는 영성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내적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책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이상적인 삶이 현실에 펼쳐질 거라는 망상 속에 갇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변화할 수가 없습니다. ​ 최소 10배 이상의 목표 달성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떻게 시련과 역경이 삶에 치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삶에 좋은 일만 펼쳐져야 한다고 정신승리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요? ​ 가장 먼저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이 됩니다. 또는 멘탈이 무너질 것 같으면 도전하지 않습니다. 다시 관념에서 집착하는 이상적 삶이 펼쳐지기를 기다립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펼쳐지기 전까지, 모든 게 물 흐르듯이 펼쳐지기 전까지 관념 속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선택을 내립니다. ​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 ‘세상은 마음의 반영일 뿐이다.’라는 세계관 하나만이 세상의 진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정적이고 오만한 믿음을 깨지 못하면, 책을 통해 의식은 과잉되고 현실에 대한 도전을 줄어들고, 아무런 변화 없이 정체된 인생으로 시간만 흘러갑니다. ​ 한국에 번역된 영성 책들은 미국 영성입니다. 미국 영성은 특히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즉, 모든 것을 마음으로 환원하는 사상적 색채를 띱니다. 너무나 내면세계로 매몰돼버리는 사상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현실에 실현되는 힘이 약합니다. 도중용을 무시하고, 극고명에 매몰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극고명과 도중용이란? (아래 링크 참조)www.steelmeme.com/insight/13585 반면, 세네카의 인생을 보세요. 그는 말년에 평생에 걸쳐 쌓아온 부와 권력을 한순간에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시련과 역경을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련과 역경을 사랑하며, 시련과 역경이야말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는 공화정을 추구하며 카이사르와 싸우다 패배하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 「“한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고, 육지는 군단이, 바다는 함대가 감시하며, 카이사르의 병사들이 성문을 장악할지라도, 카토에게는 빠져나갈 곳이 있다. 그는 한 손으로 자유를 위한 넓은 길을 만들 것이다. 내전에서조차 깨끗하고 죄짓지 않은 이 칼은 마침내 훌륭하고 고귀한 일을 수행할 것이니, 조국에 줄 수 없었던 자유를 카토에게 줄 것이다. 마음아,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오던 일에 착수하라. 너 자신을 인간사에서 벗어나게 하라. 같은 편이던 페트레이우스와 유바는 이미 서로를 찔러 죽었다. 죽기로 한 그들의 약속은 용감하고 고귀했으나, 나의 위대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카토가 누군가에게 죽음을 간청하는 것은 목숨을 애걸하는 것만큼 추하다.”」 ​ 카토는 죽기 전날 밤, 플라톤의 『파이돈』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죽기로 한 당일. 칼로 자신을 찌른 후, 내장을 앞으로 꺼내듭니다. 자유를 위하여 죽음을 선택했고, 죽는 순간조차 신에게 구걸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내장을 신에게 보여준 것이죠. 죽는 순간까지도 시련과 역경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자유를 향한 나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음을. ​ 앞서 『절대 실현 멘탈』에서 다뤘던 국궁진력 사이후이 정신입니다. ​ 세네카가 바라보는 신이란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과 역경을 주는 존재입니다. 만약 누군가 삶에 시련과 역경이 없다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당신이 이와 같은 프레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목표를 확정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시련과 역경을 당면하더라도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 ​참고문헌『세네카의 대화 : 인생에 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까치 – 절대 실현 멘탈 구매하기https://smartstore.naver.com/절대실현멘탈 원데이 특강 신청하기https://www.steelmeme.com/class
Posted by steelmeme
절대 실현 멘탈

세네카가 바라보는 신, 신에게 사랑받는 법

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합니다. 그중 당신이 『절대 실현 멘탈』을 갖춤에 있어 꼭 알아둬야 할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연설가, 정치가, 사상가였던 세네카의 관점입니다. 세네카가 바라보는 신에 대한 관점이야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을 100% 실현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상적 프레임이 될 수 있습니다. – 세네카의 인생은 결핵, 전쟁, 난파, 고문, 망명, 자녀의 죽음까지 온통 시련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말년에는 네로 황제의 광기로 인해 힘없이 끌려다니다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인생은 일찍부터 시련과 역경이 다가옵니다. 이제 막 변호사로 꽃피울 나이에 결핵에 걸립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장기 요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무려 10년이란 시간 동안 말입니다. 35세에 로마로 다시 돌아왔지만, 황제가 참여한 원로원 재판에서 변호를 맡게 됩니다. 그 결과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사형을 언도받습니다. 그는 이미 결핵을 앓고 있었기에 어차피 죽을 거라고 판단하여 운 좋게 살아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첫째 아들이 사망하고, 간통 혐의로 로마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무려 8년을 말입니다. 정신 차려보니 자신의 야망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나이는 50을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이 옵니다. 12살 네로의 가정교사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네로를 미래의 황제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한순간에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이후 최고의 부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엄청난 사치를 일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로 황제의 미친 광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모든 부를 환원하고, 은퇴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지만 이조차도 네로 황제에게 거부당합니다. 시간이 흘러, 네로 황제가 자살하기를 요구하자 의연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어찌 보면 세네카는 자신이 이룬 부와 권력조차도 단 1명의 입김으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 온통 시련과 역경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런 그는 어떤 프레임으로 신을 바라봤을까요? 그의 저서 가운데 『세네카의 대화 : 인생에 관하여』에서 섭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신은 선한 사람을 쾌락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고 단련하고 준비시킬 존재로 생각합니다.」 「신은 선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마음, 몹시 아끼는 마음으로 말합니다. “참된 힘을 얻기 위해 고생과 고통과 시련을 겪기를!” 움직이지 않아서 비둔한 몸은 무력하며, 일은 고사하고 작은 움직임에도 제 무게 때문에 쓰러집니다. 시련을 겪은 적 없는 행운은 단 한 번의 타격조차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불운과 계속 싸운 사람은 불의로 인해 굳은살이 박여 불행에 쓰러지지 않고, 아니 쓰러져도 무릎을 꿇은 채로 싸웁니다. 선한 사람들을 더없이 사랑하고, 그들이 가장 좋고 가장 뛰어나기를 원하는 신이 그들에게 단련이라는 운명을 부여하는 일이 뭐 그리 놀랄 일입니까? 신은 가끔 위대한 사람들이 재앙과 싸우는 모습을 보려는 충동을 느낀다고 해도 저는 놀라지 않습니다.」 ​ 「“역경을 당하지 않은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역경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시험대에 올라본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심지어는 바라기도 전에 모든 일이 잘 이루어졌을지는 몰라도, 신들은 그를 나쁘게 평가한 것입니다. 신들은 그가 운명을 이겨낼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운명은 겁쟁이들을 외면하며 이처럼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떤가? 내가 저 사람을 적으로 취급해야 하나?” 그는 즉시 무기를 내려놓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힘을 다 쏟아부을 필요는 없다. 그는 가벼운 위협만으로 격퇴될 것이다. 그는 내 모습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나와 싸울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겠다. 패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다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검투사는 열등한 자와 대결하는 것을 불명예로 여기고, 위험 없는 승리는 영광 없는 승리임을 알고 있습니다.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자기와 대등한 가장 용감한 사람을 찾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경멸하며 지나칩니다. 운명은 자기의 힘을 발휘하고자 가장 굳세고 올바른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운명은 무키우스를 불로, 파브리키우스를 가난으로, 루틸리우스를 추방으로, 레굴루스를 고문으로, 소크라테스를 독약으로, 카토를 죽음으로 시험합니다. 위대한 본보기는 불운에 의해서만 드러납니다.」 ​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책은 400page인데, 여기서 1page 분량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1page 분량의 내용이 신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시련과 역경을 마주할수록, 당신을 강하게 만드는 프레임이기 때문입니다. 즉 안티프래질한 프레임입니다. ​ 프래질(Fragile)의 뜻은 깨지기 쉬운입니다. 그럼 프래질의 반대는 뭘까요? 깨지기 어려움일까요? 아닙니다. 깨질수록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세네카가 바라보는 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봤습니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글에서 시련과 역경에 취약한 프레임을 알아보겠습니다. 그 후, 궁극적으로 왜 세네카가 바라보는 신에 대한 프레임이 시련과 역경에 강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문헌『세네카의 대화 : 인생에 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까치『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와이즈베리 – 절대 실현 멘탈 구매하기https://smartstore.naver.com/절대실현멘탈 원데이 특강 신청하기https://www.steelmeme.com/class
Posted by steelmeme
대표 생각 Ethos

변수와 상수 – 변하는 마음과 꺾이지 않는 마음

나는 현재 모든 계약을 100% 환불 조항을 걸고 진행한다. 주변 사업가나 친구들은 내게 말했다. 리스크가 없냐고.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9세부터 65세까지. 그리고 그중 일부와 계약을 맺게 된다. ​​ 사람마다 가진 문제는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개인에 따라 제시되는 솔루션도 달라지게 된다. ​ 최근에 들었던 말이다.”대표님, 저는 저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요.” ​ 내가 말했다.”걱정 마세요. 본인이 본인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 “대표님, 만약 제가 대표님과 계약하고 1년 뒤에 환불해달라 하면 어떡하시겠어요?” ​​ “코칭을 1년을 진행했는데도 환불을 원한다는 것은 제가 ○○님을 변화시키지 못했거나, 신용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잖아요. 이미 저에게 충분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제 책임이죠.” ​ – ​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인간 본성에 대해 나이브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다. 마키아벨리, 로버트 그린, 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 침팬지학, 조던 피터슨, 스캇 펙, 분석심리학, 관자, 노자, 손자, 귀곡자, 순자, 한비자, 상앙, 후흑학, 대망 등 동서고금 막론하고 인간의 이기심과 패도 사상에 심취해왔다. ​​ 인간의 마음은 나약하고, 상황과 구조만 주어지면 그 무엇보다도 악해질 수 있음을 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보자. 영웅들의 삶에서 배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측근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칼을 맞게 된다. 역사를 공부해 보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 누명 그리고 배신이 판을 치는지. ​ 하지만 끝과 끝은 통한다. 인간 본성에 대해 끝까지 파고들다 보면, 결국 무엇에 이르는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긍정하게 되고, 그럼에도 이 나약함을 넘어서는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 – 인간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 개인이 지닌 마음일까?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일까? 아니면 압도적인 실행력? 높은 지능에서 비롯되는 전략과 전술? 시대의 흐름에 잘 올라타는 것? ​​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글에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 관계. ​ 단, 변수로 설정된 관계가 아닌, 상수로 설정된 관계. ​ 바로 사랑이다. ​ 내가 100% 환불을 걸고도, 자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나와 계약한 클라이언트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빠져 불안한 마음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괜찮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꺾이느냐다. 내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클라이언트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 클라이언트의 흔들리는 마음에 동조되어 나조차도 “아 이 사람은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거기서 끝이다. ​​ 인간의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심층의 영역에서 연결되어 있다. ​​ 흔히들 인간 본성이라 부르는 이기적이고,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우선하는 마음. ​ 그 마음을 넘어서고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가면, 인간의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깊은 차원에서는 다 느낀다. 깊게 연결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본심(本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 그래서 호오포노포노에서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클라이언트는 내 무의식이 끌어당긴 것이다. 계약이 체결된다는 것은 내 무의식에 있는 문제가 클라이언트를 통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클라이언트가 겪는 문제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의 책임인 것이다.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을 성공학의 대가, 나폴레온 힐은 마스터마인드라 부른다. 마스터마인드란 2명 이상의 사람의 마음이 조직화된 상태, 하나 된 상태이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도 묘비명에 다음과 같이 말을 남긴다. 자기보다 훌륭하고 덕이 높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을 곁에 모아둘 줄 아는 사람 여기 잠들다 그는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고, 말년에 자선 사업에 몰두했다. 그의 성공을 일이관지하는 말은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능력에 있었다. ​ 이나모리 가즈오가 회생 불가능하다고 모두가 포기한, 부채 20조의 JAL 일본 항공을 기적적으로 살려낸 이유이기도 하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무엇을 했는가? 분열된 JAL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데 헌신을 했다. ​ 결국 핵심은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꺾이지 않는 마음에 달려 있다. ​ 클라이언트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도,”내 앞에 클라이언트는 극한의 변화를 이루어 낸다. 인생을 180도 바꿔낸다. 그러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전제를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일관된 시선을 견지하는 것. 더 나아가 클라이언트가 최고의 미래를 실현함을 전제하면서, 진심으로 코칭하는 것. ​ 이러한 진심은 반드시 전달된다. ​ “아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고 있구나, 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내 인생이 변화될 거라고 전제하고 있구나.” ​ 이러한 사랑은 반드시 클라이언트의 잠재의식에 파고 들어간다. 그 후, 실제 클라이언트의 삶은 변화한다. ​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와의 문답을 통해 전하였던 것도 사랑(仁)이요, 현대 최면의 거장 밀턴 에릭슨이 내담자에게 전하였던 것도 사랑이었던 이유이다. ​ – 당신의 잠재력을 1000% 극대화하는 법[원데이 특강 신청하기]
Posted by steelmeme
대표 생각 Ethos

감사하면 인생이 망한다?

최근 원데이 특강을 진행하는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 “감사일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에 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일기 쓰는 것을 그만뒀어요.” ​ 나는 현재 감사일기 4년 차다. 작년 한 해 2023년을 돌이켜보면,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감사일기를 작성했던 것 같다. ​​ 1112일 동안 감사일기를 써온 사람으로,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감사일기를 쓴다고,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감사일기를 쓰면 왜 현실에 안주하는 걸까? 감사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다. 따라서 감사일기를 쓰게 되면, 내가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 문제는 현재에 만족할 경우,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파민은 높은 목표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울 때 분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흐름이 발생한다. ​ 감사일기를 쓴다 →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 감사하게 되면서, 현재에 만족감을 느낀다 → 도파민 분비가 안 된다 → 도전하지 않게 된다 ​ 이것이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인생이 바뀌지 않는 이유다. 이들은 감사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게 된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세로토닌 행복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하면서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사하면서도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있다. 감사일기를 쓸 때, 다음과 같이 쓰는 것이다. ​ 목표가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   )가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 ​​ 괄호 안에는 당신의 목표를 넣으면 된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목표가 너무 쉬워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높아서도 안 된다. 물론 크게 생각하는 것은 좋다. 당신은 5년, 10년 뒤 목표가 있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생을 통해 달성코자 하는 원대한 목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도파민을 분비시키고자 한다면, 쪼개야 한다. ​ 도파민은 도전했을 때, 어렵더라도 달성해 볼 만하다고 느낄 때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 당신이 집중적으로 헌신했을 때, 1년 안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권하는 바다. 매해 신년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 신년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5개라고 가정해 보자. 그럼 각각의 목표마다, 목표가 달성되어서 감사하다고 쓰면 된다. ​ (목표 ①)이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목표 ②)가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목표 ③)이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목표 ④)가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목표 ⑤)가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 ​ 이런 식이다. 이렇게 작성할 경우, 목표 달성과 감사하는 마음 둘 다 잡을 수 있게 된다. ​ 이렇게 작성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 1) 목표를 매일 견지하기 때문에, 도파민 분비가 지속된다. ​ 2) 어렵지만 도전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스트레스를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은 신경계를 안정시킨다. 투쟁-도피 반응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 3) 목표가 달성된 미래를 잠재의식 차원에 각인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의식은 논리적이지만, 잠재의식은 감정적이다. 목표가 달성되어서 감사하다고 매일 느끼게 되면, 목표 달성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 ​ ​ 정리해 보자. ​ 감사일기를 작성할 때, 크게 2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 1)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느끼지 않는 것.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감사일기 형태.숨을 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샤워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감사일기 형태. ​​ 2)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감사하는 것. 목표 달성을 확정하는 감사일기 형태.목표가 달성되어서 감사합니다. 이처럼 목표가 이미 달성된 것을 전제로 감사일기를 쓰는 형태. ​ 이처럼 2가지 방식을 혼합해서 감사일기를 쓸 경우, 현재에 안주하지 않게 된다. 감사를 통해 물질적 성공과 내면의 행복을 둘 다 잡을 수 있게 된다. ​ – 당신의 잠재력을 1000% 극대화하는 법[원데이 특강 신청하기] ​
Posted by steelmeme
대표 생각 Ethos

감사일기 1,111일 차가 말하는 감사의 본질

10년 전, 어떤 강의에서 강사가 말했다. ​​ “저는 숨 쉬는 것과 감사하는 마음을 연결했어요.” ​​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감사한다는 것인데, 삶에 감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러다 8년 전, 길을 걷는 도중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다. 공황장애였고, 그 당시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도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야 감사할 수 있지만, 감사하는 루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 어느 날, 보물지도(비전보드)를 처음으로 만들게 되었다. 문득 보물지도에 감사하는 마음을 넣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감사노트 사진에 감사하는 마음이라 쓰고 방 벽에 붙였다. 그리고 잊었다.(해당 이미지는 아래와 같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잠에서 깨자마자 어떤 강력한 동기가 올라왔다. 무의식적으로 본 감사노트 이미지가 잠재의식에 각인된 것이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매일 써야겠다는 동기가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감사일기를 쓴 지 1111일이 되었다. 정확히 2021년 1월 1일부터 시작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1월 16일. 1111일 차다.2021.01.01 ~ 2021.12.312022.01.01 ~ 2022.12.312023.01.01 ~ 2023.12.312024.01.01 ~ 2024.01.16 (진행 중) 나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인생 그 자체가 감사라는 것을 깨달았다.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저는 행복합니다.” ​ 행복하다 해서, 고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다 해서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도 아니다. 감사일기를 쓰면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 감사일기를 통해, 나는 행복해졌다.감사일기를 통해, 나는 내 삶에 만족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감사일기를 통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 감사일기를 통해, 진심으로 다음과 같은 명제 위에서 인생을 살고 있다. ​ 내 삶 자체가 이미 기적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기와 앞으로의 미래를 암울하게 그리는 사람이 많다. 물론 세상에는 항상 문제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만약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현시대가 난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와 같은 사람들은 기후 문제, 핵 문제, AI 문제 등으로 인류 전체가 종말 될 수 있는 리스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리스크가 존재하고, 예상치 않은 파국(블랙스완)이 초래될 수 있는 시대라 말한다. ​ 그러나 인류 전체의 삶의 질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압도적으로 나아졌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그 자체로 엄청난 부의 혜택 속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인 것이고, 당연한 것이 아니다. ​ 나는 진심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 한국에서 1990년에 태어났다. 이것만으로 기적이다. 이 사실만으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내 삶 자체가 이미 기적이다. ​ 이러한 명제로부터 시작한다면, 실상 삶 자체가 보너스라는 생각이 든다. ​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건 뭘까. ​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 그렇다. 감사하는 마음이란 연금술이다. ​​ 당연한 것에서 황금을 발견해 내는 능력인 것이다. ​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항상 자원 부족에 시달렸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한 사람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사라졌다. 이러한 진화적 기제는 이미 누리고 있는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게 만든다. ​ 그러나 후천적으로 감사하는 훈련을 하게 되면, 뇌가 바뀌게 된다. 신경가소성에 의해, 항상 부족함과 결핍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적임을 깨닫는 관점으로 전환된다. ​ 행복이란 무엇일까? ​​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인정받고, 더 많은 권력을 얻는 것일까. 나는 욕망을 긍정하고, 욕망을 사랑하며,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때 더 많이 갖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 그러나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것. 내 시선이 미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 그래서 삶이라는 무대 전체를 감사와 기적으로 볼 수 있는 것.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풍요이자 행복이 아닐까. ​ 앞서 내가 말했듯, 인생은 중도·중용의 적중이다. 인생이란 결국 유용한 프레임과 패러다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감사하는 마음 또한 하나의 프레임이자 패러다임일 뿐이다. 따라서 [인생은 감사 그 자체다]라는 프레임과 패러다임’만’으로 인생을 살라는 게 아니다. ​​ 다만, 21세기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혜택과 엄청난 부의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 절대적 측면에서 삶의 질이 나아졌음에도, 상대적 비교 속에서 결핍과 부족함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 문제는 결핍과 부족함의 프레임에 갇힐 경우, 끝없는 바닷물을 마시게 된다. 욕망을 추구하고, 원하는 것을 가질 때마다 오히려 더 큰 갈증만을 얻게 될 것이다. ​ 결핍과 부족함의 프레임에 절여진 뇌가 감사하는 프레임을 끌어안을 때,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질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 당신의 잠재력을 1000% 극대화하는 법[원데이 특강 신청하기] ​
Posted by steelmeme
절대 실현 멘탈

점을 봤는데, 내 미래를 다 맞춘다면 믿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이 글 마지막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음즐록』이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원료범(1533~1606)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의학을 공부했으니 의사가 되라고 명합니다. 원료범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 벼슬길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절에 들어가 의학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씨라는 노인을 만납니다. 공노인은 주역의 대가인 소강절 선생의 주역을 통달한 사람입니다. 주역을 통달해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공노인은 예언을 합니다. 고을에서 실시하는 과거시험에 14등으로, 부의 시험에서는 72등으로, 도의 시험에서는 9등으로 합격할 것이라고 말이죠. ​ 원료범은 다음 해에 과거시험을 쳤고, 3곳에서의 석차가 공노인의 예견한 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 공노인은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도 점을 칩니다. ​ 「아무 해의 과거시험에 몇 등으로 합격한다. 아무 해에 마땅히 녹봉을 받는다. 아무 해에 마땅히 공생이 되고, 공생이 된 뒤 아무 해에 마땅히 사천 땅의 부나 현의 지방장관이 될 것이다. 지방장관에 재임한 지 2년 반 만에 곧 휴가를 청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대 나이 53살 되는 8월 14일 축시에 집에서 죽는데 애석하게도 그대에게는 자녀가 없다.」 ​ 원료범은 운명론자가 되었고, 공노인이 말한 대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정확하게 공노인의 예언이 맞아떨어집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운곡선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원료범은 운곡선사와 함께 사흘 밤낮 동안 대화를 하며 잠을 자지 않습니다. ​ 운곡선사는 원료범에게 말합니다. “그대는 사흘 동안 앉아 있었는데도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보이지 않았다.” 운곡선사 입장에서는 원료범을 칭찬한 것이죠. ​ 그러자 원료범은 말합니다. “저는 공선생님에게 평생의 운명을 추산당했습니다.” 모든 운명을 예측당했고 어차피 운명대로 인생을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 운곡선사는 웃습니다. “나는 그대가 호걸이라 했는데,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 “사람은 마음을 없앨 수 없으니, 끝내 음양에 의해 묶이게 되는 것이다. 어찌 운수에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오직 보통 사람에게만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 그대는 20년 동안 공선생이 추산하여 정한 운수에서 일찍이 터럭만큼도 꿈쩍하지 못했다. 어찌 평범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식의 레벨이 낮아, 결정론적 관점을 깨달은 사람에게 의식이 먹혀 버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러자 원료범이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타고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 운곡선사가 답합니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자신의 복도 자기가 구하는 것이다. 『시경』과 『서경』에서 말하는 것은 정확히 맞는 밝은 가르침이다. 우리의 불교 경전에도 ‘공명을 추구하면 공명을 얻고, 부귀를 구하면 부귀를 얻고, 남녀를 구하면 남녀를 얻고, 오래 살기를 구하면 오래 산다.’라고 쓰여있다.” ​ 돈을 추구하면 돈을 얻고, 명예를 추구하면 명예를 얻고, 권력을 추구하면 권력을 얻으며, 깨달음을 추구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서경』의 태갑 편에 ‘하늘이 만드는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짓는 재앙으로는 살아날 수가 없다.’라고 쓰여있다. 공선생이 그대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자녀를 낳지 못한다고 추산한 것은 하늘이 만든 재앙이므로 오히려 피할 수가 있다. 그대가 지금 덕성을 채우고 넓히며 힘써 착한 일을 행하며 많은 음덕을 쌓는다면 이것은 자기가 만드는 복이니 어찌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겠는가?” ​ 사주, 손금, 관상이 좋지 않아서 실제로 불운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스스로의 삶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경우에는 답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면, 하늘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이죠. ​ 원료범은 운곡선사를 만나 운명론자에서 개척론자로 180도 입장을 달리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은 공선생의 예언을 완전히 빗겨나가는 형태로 개척해 나갑니다. ​ 즉 타고난 운명에 의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원인론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미래를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론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입니다. ​ 당신이 원대한 변화를 꿈꾼다면, 인생의 기준을 과거에 둬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과거란 사주, 점성학, 관상을 포함한 성격검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당신이 진심으로 원대한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인생의 기준을 미래에 둬야 합니다. 즉 성격조차도 목표에 맞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 목표가 먼저고, 성격이 나중입니다. 목표에 따라 성격은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대한 삶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 반면, 평범한 대다수의 삶. 운명론적 암시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격이 먼저고, 목표가 나중입니다. 성격에 따라 목표를 한계 긋습니다. ​ 당신은 어떤 미래를 창조하고 싶은지, 당신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 미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절대 실현 멘탈』은 그 어떤 외부 암시에도 영향받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만이 진실입니다. ​ 맞습니다. 실제로 Another Level이 존재합니다. 최상위 부자들만 만나는 명리학자, 점성학자, 무당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똑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 영향을 받고자 하거든 일단 본인의 개척 레벨을 높이세요. 그 후에 인생 흐름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다가오는 경우엔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면 됩니다. ​ 만약 본인의 운명 개척 레벨이 낮은 상태라면, Another Level의 타로, 명리, 관상, 점성학, 무당 등의 전문가를 만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신묘하게 맞추는 사람을 만나서 한 번, 두 번 조언을 구합니다. 조언을 구할 때마다 적중해서 인생의 치트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운전대를 스스로 잡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넘깁니다. ​ 전적으로 미래를 보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의식 상태로 가면, 반드시 삶에 의해 대가를 받습니다. ​ 명심하세요. 본인의 개척 레벨이 높아야 합니다. 운명을 내가 지배할 수 있다는 사상적 중심이 굳건해야 합니다. 결정론적 암시는 당신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때만 받아들이세요. 잘못된 암시 하나로 당신의 운명 자체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논어 옹야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敬鬼神而遠之경귀신이원지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Another Level의 타로, 명리, 관상, 점성학, 무당 등의 전문가를 만난다 하더라도, 공경(참고)하되 멀리하라. ​ 참고문헌『음즐록』, 정우영, 자유문고 – 절대 실현 멘탈 구매하기https://smartstore.naver.com/절대실현멘탈 원데이 특강 신청하기https://www.steelmeme.com/class
Posted by steelmeme
절대 실현 멘탈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등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세상에는 결정론 사상이 넘쳐납니다. 사주, 관상, 점성학뿐만 아니라 MBTI, 에니어그램, 성격 5요인 이론 등 살면서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입니다. ​ 문제는 이러한 결정론 사상에 노출될 경우, 다음과 같은 암시에 걸리게 됩니다. ​ 운명은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으며, 인간의 타고난 경향성은 바꿀 수 없거나 바꾸기 힘들다. ​ 당신은 『절대 실현 멘탈』을 읽고 있습니다. 즉, 보통 사람들과 달리, 상식을 넘어서는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10배, 100배 혹은 그 이상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이론 등 인간을 한계 긋는 암시를 개무시해야 합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권위에 의한 암시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이론에 의한 암시로, 인생 전반이 좌지우지됩니다. ​ 비상식적인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 이들은 목표에 자신을 맞춥니다.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 자신이 되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을 토대로 현재를 살아갑니다. ​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고, 영업하는 게 죽을 만큼 두렵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영업을 해야만 한다면, 누구보다도 제대로 영업을 해내겠다.” ​ “나는 마케팅을 전혀 할 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케팅을 배워야 한다면, 최고를 찾아가 배움을 청해서 반드시 성과를 만들어내겠다.” ​ “매번 사람한테 배신당해서 상처가 너무 크다. 그렇지만 내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사람을 믿어야 한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 “나는 난독증이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부자가 되려면 독서하고 글쓰기를 해야 한다네. 그럼 어떻게 해서든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해내자.” ​ “MBTI에서 극P가 나왔네. 하지만 올해는 규칙적으로 일관된 실천을 해야 할 시기다. 행동과학과 환경 설계를 토대로, 후회 없이 실천하는 한 해를 보내자.” ​ 반면, 운명을 개척하는 레벨이 낮은 사람일수록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이론 등에 취약합니다. 결정론에 쉽게 암시를 당합니다. ​ 이들은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이론의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직업을 결정합니다. ​ 이들은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이론의 내용을 토대로 인생 목표를 세웁니다. ​ 이들은 사주, 관상, 점성학, MBTI, 성격 5요인 이론의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 운명을 개척하는 의식의 힘이 너무나 약해서, 결정론적 사상의 암시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뚫고 나가지 못합니다. 약간의 시련과 역경, 어려움을 마주하면 극복해 내지 못하고, 바로 변명 거리를 찾습니다. ​ “사주 때문에 인생이 안 풀리는 거야.”“점성학적으로 잘 안되는 시기인 거야.”“나는 애초에 사업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야.” ​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 최고의 미래를 실현하는 사람들은 목표에 자신을 맞춥니다.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설계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과거를 재맥락화합니다. ​​ “나는 학교 폭력을 당해서 PTSD가 걸렸어. 왜 내가 피해자여야만 하지? 학폭으로 인간관계도 다 망가졌고, 자신감·자존감도 무너졌어. 앞으로 내 인생은 계속해서 실패할 거야.” (x) ​ “나는 학교 폭력을 당해서 PTSD가 걸렸어. 하지만 난 복수한다. 날 괴롭혔던 그 어떤 새끼들보다 성공한다. 그 시절 겪었던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어. 악착같이 악으로 성공해낸다.” (o) ​ “난 사주가 이러이러하니까 이런 직업과 목표를 가져야 돼” (x) ​ “난 사업가가 될 거야. 돈 많이 벌건데. 관상이나 사주팔자가 돈을 못 번다 하네? 지랄하네.” (o) ​​ 당신의 개척론 사상의 레벨이 높으면, 어중간한 결정론 사상이나 학문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당신이 삶을 개척하겠다는 정신 레벨이 50이라 가정하면, 50미만의 결정론 사상과 학문에 영향받지 않게 됩니다. ​ 만약 당신이 성공학에서 이야기하는 『절대 실현 멘탈』을 갖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 당신은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살지 않게 됩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토대로 현재를 살게 됩니다. ​ 당신은 최고의 미래를 100% 확정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정신 레벨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사주나 점성학과 같은 사상의 결정론적 암시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확고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본질은 당신이 원하는 삶을 실현해 내는 운명 개척 레벨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역과 같은 학문에 통달한 결정론 사상이 극에 달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암시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 – 절대 실현 멘탈 구매하기https://smartstore.naver.com/절대실현멘탈 원데이 특강 신청하기https://www.steelmeme.com/class
Posted by steelm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