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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로 현재를 산다는 것 – 『퓨처 셀프』를 읽고



『퓨처 셀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미래의 나로 현재를 살아라”


이것은 사실 자기계발의 클리셰다. 성공학의 정수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그다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다만, 『퓨처 셀프』의 특징은 학술적 근거를 최대한 반영하여 저술된 책이라는 점이다.


『퓨처 셀프』의 저자, 벤저민 하디의 책은 모두 읽을만하다. 전작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는 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유명한 의식주의자인 데이비드 호킨스를 비판하면서 말이다. 또 다른 책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달한다. 원제는 ‘성격은 영구적이지 않다’로, MBTI-BIG5 등의 심리 검사를 비판하는데 1장을 할애한다.


벤저민 하디는 조직 심리학자이며, 그는 학술적 근거를 토대로 한 자기계발서를 집필해왔다.



자 그럼 『퓨처 셀프』는 좋은 책인가?


많은 사람들이 『퓨처 셀프』를 읽을 것이며, 미래의 나의 중요성을 머리로는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식을 스쳐 지나갈 뿐, 잠재의식에 각인되지는 않을 것이다. 100명의 독자가 존재한다면, 99명의 독자는 현재의식 수준에서 이해하고 그칠 것이다.


그 결과, 삶에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없이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미래의 나로 현재를 살아라”라고 주장해왔고, 해당 책들을 읽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돈오(단번에 깨달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공학에서 주장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다. 당신이 진정으로 실현하고 싶은 미래를 구체화해라. 해당 미래를 실현할 자격이 있음을 허용하라. 당연히 실현될 것임을 전제하고 행동하라. 그럼 결국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어떤 미래를 실현하고 싶은지 모른다. 사실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는 성공학이 말하는 주장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어떤 삶을 실현하고 싶은지 고민한다. 그 결과 명확하게 수치화된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1. 명확히 수치화된 목표를 잠재의식에 각인하는 행동을 지속하지 못한다.
  2.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멘탈이 무너진다.
  3.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지만, 내적 저항(감정, 신념 등)을 이겨내지 못해 실행하지 못한다.


성공학을 접했지만, 인생에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내가 원하는 미래가 절대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믿을 수 있죠?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이들은 미래의 나로 현재를 사는 것이 믿음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래의 나로 현재를 살면, 원하는 삶이 절대적으로 실현됨을 믿을 수 있게 근거를 제시하라고 의문을 표한다.



나는 일전에 멘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수많은 스님들이 조사선을 보려고 수행을 하는데, 평생을 매진해도 조사선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기서 조사선이란 쉽게 말해, 선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러자 멘토가 답했다.

“(왼쪽 팔의 가운을 오른손으로 꼬집어 돌리며) 스승을 제대로 만나서, 진리에 이르는 길을 단축시켜야 한다. 단번에 진리를 체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평생에 걸쳐도 진리를 보지 못한다.”



믿음과 확신은 약하다. 믿음과 확신을 넘어서야 한다. 돈오해야 한다. 단번에 깨달아야 한다. 즉, 알아야 한다.


믿음을 넘어서 알아야 한다.


미래의 나로 현재를 살면, 원하는 삶이 실현된다는 것을 앎으로써 깨닫는 경계가 있다. 모든 성공학의 거장들은 결국 이것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경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시크릿은 사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믿음의 영역에서 시크릿을 받아들였고, 나름 실천해 보았으나 실제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칼 융은 말년에 질문을 받는다.

“신을 믿습니까?”

“아니요. 저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신을 압니다.”



펜을 집어보자. 그리고 놓아보자.

펜은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할까?

우리는 안다. 펜은 아래로 떨어질 것을.



『퓨처 셀프』란 책은 학술적 근거를 토대로, 미래의 나로 현재를 살면 원하는 삶이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벤저민 하디라는 사람의 시선으로 학술적 근거에 기반한, 돈오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다.


누군가는 학술적 근거를 토대로 한, 벤저민 하디의 방식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개신교와 잠재의식을 엮어서 설파하는 조셉 머피의 방식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뇌과학을 토대로 설파하는 호시 와타루나 타라 스와트 방식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시크릿, 네빌 고다드, 밥 프록터와 같은 형이상학 방식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양자역학을 기성 과학자의 비판을 무시하고 끌어당김에 갖다 붙이는 유사과학 방식이 맞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돈오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열망하는 최고의 미래를 확정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다”는 앎에 이르는 것이다.


앎에 이르는 순간, 논리적 근거는 필요가 없어진다. 믿음과 확신도 필요가 없어진다. 비과학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타인의 공격에도 평온한 내면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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