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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생각 Ethos

비판의 칼날이 돌고 돌아, 나의 목을 친다.


최근 성공학, 자기계발 분야에 논란이 많다.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서, 기존의 네임드들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중들의 원색적 비난, 합리적 비판의 정도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지금까지 성공학과 자기계발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성공은 주로 돈과 관련되었다. 많은 돈을 버는 것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주된 흐름이었다. 사실 이보다 더 강력한 동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목적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불나방 같은 대중들의 욕망이다.


어느 때나 현실성보다는 환상을 구매하는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에 과장광고를 동반한 공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로 포장지만 바뀌어 반복될 것이다.


불나방 같은 자신의 욕망을 먼저 반성하기보다는, 공급자에게 칼을 들이미는 게 대중의 심리다. 1차적으로 자신의 의사결정에 책임지지 않고, 온전히 바깥을 향해 비난과 비판을 하는 정신 상태. 애초 이러한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이 성공학, 자기계발 분야에서 강의를 듣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뤄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합리적 비판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합리적 비판에만 머문다면, 본인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안이 없는 공격은 인생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특히나 한국이란 사회는 명분만 있으면 집단 린치, 마녀사냥에 특화된 곳이다.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면 참으로 재밌는 엔터테인먼트이자 팝콘각이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에 대한 관심은 관찰자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자기보다 못한 벗은 없으니,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이 구절에 대해 남회근 대사는 『논어별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중략) 주의해야 할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그의 말까지 버리지는 말고, 그의 말 때문에 그 사람까지 버리지는 말라.”는 것인데, 그 사람의 행위는 아주 못돼 먹었지만, 때로는 그가 좋은 말 한마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나쁘다고 해서, 그의 좋은 의견을 한사코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그의 말 때문에 그 사람까지 버리지는 말아야”할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남을 욕하고 험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험한 말을 하는 사람이나 촌뜨기는 학문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얕잡아 봅니다.

이 양쪽 모두가 옳지 않으므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자기보다 못한 벗은 없습니다.”(무우불여기자)​​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장점이 있으니, 우리는 그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은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합니다.”(과즉물탄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정말로 배울 것이 없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나르시스트다. 허물없는 사람 없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때로 타인을 합리적으로 비판해야 하지만, 비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손으로 가리킬 때,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이 글은 나에게 쓰는 글이다. 스스로 반성하기 위한 글이다. 대인춘풍 지기추상하려 해도,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하기 때문이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나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대중들의 공격성을 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원색적 비난이든, 합리적 비판이든 간에 공격적인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인생은 단절된 삶의 형태를 띤다.


인생에서 건강한 형태의 연결이 부재하기 때문에, 항상 연결감에 몸부림친다. 잘못을 범한 대상을 향해 집단 린치를 가하면서, 집단과 연결되고자 한다. one of them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희열을 얻게 된다.


스캇 펙은 말한다. 인간 악이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려 하지 않는 나르시시즘이라고 말이다. 흑백논리로 비판의 대상을 악으로 규정하여, 집단 린치 가하는 행위는 인간 악의 표상이다. 누군가를 마녀사냥하고 집단 린치를 가하는 동안,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이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초연결 사회에서 나약함은 약점이 되고,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마음’과 ‘뇌’의 변화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인간관계가 삶의 변화에 굉장히 중요한 영역임을 전달했다.


세네카가 바라보는 신, 신에게 사랑받는 법
www.steelmeme.com/insight/13686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단절된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관계를 맺어 변화를 이루어낼 것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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