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은 반드시 있다 – 절대신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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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반드시 있다 – 절대신념의 힘


인생은 끊임없는 문제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깥에서 오는 것일까?


한 번 사고실험을 해보자. 타인의 삶을 예로 들어, 상황 판단을 해보자.


어떤 사람 A는 암에 걸렸다.
→ 이 지점에서 당신은 암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A는 엄청난 노령이고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 삶을 정리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 여기서 당신은 암이라는 문제가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문제가 축소된다.

따라서 A에게 암은 그저 삶을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암 판정을 받기 전과 다를 바 없이, 남은 인생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 암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위의 사고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자.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물론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때, 누가 보더라도 문제라고 여겨지는 상황이 있는 법이다.


다만, 앞서 사고실험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문장을 볼 때, 보통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또 다른 사고실험을 해보자.


위에서 쿵쿵쿵쿵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층간 소음이 발생한다.
→ 이 지점에서 당신은 층간 소음 문제가 발생했다고 여길 것이다. ​

그런데 층간 소음을 겪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엄청나게 뛰어놀았지. 밑에 사셨던 분들이 이해해 줬던 게 기억나네. 이게 참 층간 소음이 날 수밖에 없게 설계된 게 문제지. 이 정도 소음은 이해해 주자. 애들이 뛰어놀아야지.”
→ 이 새로운 사실을 토대로, 층간 소음을 겪는 사람에게 층간 소음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즉 문제라는 건 무엇인가. 우리가 해당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저 바깥에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당신이 문제라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문제인 것이다.


외부에서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냐다. 이것은 꼭 외부의 상황이나 사건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상상이나 생각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당신이 문제를 인식하기 전, 이 세상은 무경계 상태다. 경계가 없다. 일원성의 상태다. 분별이 없는 온전한 상태다. (태극)



그러다 외부에서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벌어진다. 또는 내면에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른다. 당신은 그것을 문제로 볼 수도 있고,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그 순간 당신은 문제라는 경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암이 걸린 것은 문제다.
층간 소음은 문제다.


이처럼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문제라는 경계를 창조한 셈이다.


자 그럼, 태극이라는 일원성의 상태에서 문제라는 陰(음)이 태어났다. 그렇다면 동시에 무엇이 태어나야 할까? 바로 해결이라는 陽(양)이 태어나야 한다.

당신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에서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陰(음)을 창조하는 것이고, (음)을 창조하는 순간 (음)에 대응하는 陽(양)이 상보적으로 태어나야 한다.


즉 문제에 대응하는 해결책은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원성의 세상은 일원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를 이론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There is Always a way.

해결책이 없는 문제란 없다.
There are no problems without solutions.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Everything is figureoutable.

길을 찾을 수 없으면, 길을 만들어라.
Aut viam inveniam aut faciam.


음에 대응하는 양은 반드시 존재한다. 문제에 대응하는 해결책은 반드시 존재한다. 음/양은 상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음과 양은 상즉상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음/양의 이치를 모른다. 그렇기에 삶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반드시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감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마주한 순간, 해결 가능성을 처음부터 낮게 잡는다. “어차피 안 될 거야”,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라고 전제한다. 이러한 마음이 행동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또는 용기를 내어 문제를 마주하지만, 실패하는 순간 무너진다. 사람에 따라 두 번, 세 번, 네 번 도전하지만 결국 실패 앞에 무너진다. “역시 안되는 거였어”라는 결론을 내리고 손을 놓아버린다. 때때로 이러한 실패 경험이 감정과 결부되어 신념으로 형성될 경우, 평생 한계를 긋고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반면,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신념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문제를 마주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당장 눈앞에 해결책이 없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해결책은 반드시 있으며, 아직 찾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면, 해결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이것은 낙관적인 위로가 아니다. 이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신념에도 밀도가 있다.

똑같이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념이 어느 층위에 자리하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발휘한다.


현재의식 수준의 신념은 머리로 아는 것이다. 책에서 읽었고,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서 문제를 마주하면 흔들린다. 불안이 올라오고, 의심이 끼어든다. 쉽게 포기하게 된다.


개인무의식 차원의 신념은 조금 더 깊다. 반복된 경험과 학습을 통해 몸에 배어있다. 웬만한 상황에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 전례 없는 실패 앞에서는 균열이 생긴다.


그렇다면 심층무의식, 더 나아가 근본이 되는 마음에 신념이 각인되면 어떻게 될까.

표층의 마음이 파도라면, 심층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파도가 출렁거리듯 표층의 마음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근본이 되는 마음. 심층의 마음은 안다. 문제가 아무리 크고, 실패가 아무리 반복되어도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심층에서의 전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근본이 되는 마음에 각인된 신념. 이것을 우리는 절대신념(Axiom)이라 부른다.


절대신념은 절대성이다. 절대성이란 결국 하나님, 하느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근본이 되는 마음(一心)은 나의 마음을 넘어서 있다. 나의 몸도, 나의 감정도, 나의 생각도. 동시에 나를 포함하고, 이 세상을 포함하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근본이 되는 마음에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신념이 각인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근본이 되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과 나의 몸을 넘어, 이 세상을 통해 방법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귀인이 나타난다. 기회가 생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길이 열린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기적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운이라 부른다. 어떤 사람은 인과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흐름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무엇이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같다.


근본이 되는 마음이 창조한 것이다.
잠재의식 一心이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신념은 단순한 심리적 도구가 아니다. 절대신념은 잠재의식一心과 연결되는 통로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신념을 근본에 새긴다는 것은, 결국 이러한 의미다.


나의 몸, 나의 마음으로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이 세상을 창조하는 마음과 함께 해결하겠다는 선언.


이 선언 앞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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